2024년을 돌아보며

2024년은 내가 개발자로 일하는 7년의 커리어 중에 가장 큰 위기를 경험했고 힘들었던 해였다.
2023년 회고를 들춰보니 그때에도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것을 언급했었는데 2024년은 그보다 더 심했다. 
나 또한 다니던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실업자가 되었다.
권고사직을 계기로 나는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잘렸으니 다시 이직을 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가?' 
아직은 연차가 많이 쌓이지 않았고 젊기 때문에 이직 하는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떠올릴 수 없었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일까?
나에게 2024년은 스스로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는 시기였다.
 

생애 첫 권고사직

사실 2023년12월 나는 권고사직으로 인해 무직자가 되었다.
연말에 갑작스럽게 진행된 일이라 2023년 회고에서는 경황이 없어서 다루지 못했었다.
권고사직은 뉴스에서나 접하는 다른사람 얘기라고만 생각했던 일이 나에게 벌어지니 당황스러웠다.
회사는 경영악화를 이유로 프로덕트 개발팀 전원을 해고했다.
투자금의 절반 가량을 소진했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고 PMF를 찾지 못했다고 판단해서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고 공지했다.
회사에게 서운하고 분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회사는 위로금 명목으로 2개월치 급여를 챙겨줬다는 점이 씁쓸한 마음을 달래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 
권고사직 절차를 진행하면서 나는 이직하기위해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처럼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인력시장에 많이 풀려서 경쟁이 심해진 것도 한몫했다.
어쩌다 운이 좋게 최종 면접까지 가더라도 연봉협상에서 결렬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회사의 규모, 투자 시리즈만 봐도 내가 지원해 볼 만한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분위기는 회사들이 3~5년 차 가성비 좋은 인력을 채용하는데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계속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했던지라 잠시 구직활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게 휴식을 선물할 겸 제주도에 한 달 살기를 다녀왔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여행 스타일이 독특한 편이다.
관광은 가볍게 하고 남은 시간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컴퓨터를 하거나 코딩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제주도에는 이런 장소들이 몇 군데 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오피스제주', '스페이스모노', '아임포트'와 같은 노마드 워커를 위한 공유오피스에 다녀왔다.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코딩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는데 '오피스제주'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오피스에서 일에 집중하다가 고개를 살짝 들면 푸른 바다가 펼쳐진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숨 막히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콘크리트 숲에 나를 가둬놓을 때와 비교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해방감과 창의력이 생기는 감정을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제주도 한 바퀴를 돌면서 가보고 싶었던 곳을 구석구석 다녀왔다.
좋은 리프레쉬 휴가였다.


정부지원사업에 도전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던 중 창업에 관심이 생겼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코딩할 수 있는 작업실을 갖고 싶다'라는 로망이 있다.
오피스 제주에서 작업을 하던 중 문득 '로망은 반드시 돈을 많이 벌고 여유가 생겨야만 실현 가능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그만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나도 노마드 워커를 위한 공간을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계획을 세워보았다.
처음에는 바다가 잘 보이는 지역들로 알아보았다.
하지만 임대매물로 나온 건물 같은 건 있을 리가 없었다.
직접 토지를 매입해서 건물을 올리거나, 오래된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하는 방법뿐이었다.
하지만 토지에도 용도가 있었고 도시 계획에 맞게 이미 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다. 
내가 원하는 위치가 있더라도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물론 비용 또한 당연히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이건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복잡한 문제라 이내 접어버렸다.

조금 타협해서 상가자리를 찾기 쉬운 서울에 만들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다.
공부하거나 일할 때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카페를 찾는 이유는 정말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편해서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가설은 적당한 가격에 앉아서 공부하거나 캼퓨터로 업무를 처리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카페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카페에서 음료를 하나 시키고 장시간 머문다.
이들이 오래 머물수록 업주들 입장에서는 회전율이 떨어지고 매출에 타격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페를 대신해서 일상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작업 공간 대여사업을 기획해 보았고 사업계획서도 작성했다.
정부지원사업에 기획한 아이디어를 제출해 보았지만 탈락했다.
부동산 임대업으로 속해서 애초에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보면서 사업계획서를 써본 경험은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면밀히 수익과 비용을 예상해 보면서 사업성이 있는 아이템인가를 따져보는 작업들은 내 시야가 더 넓어지게 만들어 주었다.
사업성분석을 해보기 전에는 '왜 이런 아이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세상에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해봤자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돈이 되는 사업아이템을 발굴해서 철저히 준비해 봐야겠다.

다시 한번 스타트업

그렇게 정부지원사업에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나는 다시 무언가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3개월 전과 똑같이 무직이었지만 그래도 사업을 꼭 시작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사업을 시작하려면 자본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더 일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6월에 이직을 하게 됐다.
새 회사에서는 모바일앱과 AI서비스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실제로 AI를 실무에 활용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업무 강도는 심한 편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배우는 점도 많다.
내가 다녀본 가장 얼리스테이지 스타트업이라 체계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미래의 내가 창업을 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잘 헤쳐나가야지

 

전산회계 자격증 취득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긴 뒤에는 재무회계에 관심이 생겼다.
개인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드머니를 모아야 하고 이를 위해 돈을 절약하는 것처럼,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을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껴야 한다. 
즉 어디서 돈이 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회계를 알아야 하고 장부를 잘 기록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는 가볍게 전산회계 2급부터 시작했다.
2급은 따기 쉬운 편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시험을 준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시험은 70점을 넘으면 합격이었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보다는 배움에 목표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100점 만점으로 취득하기 위해 더 꼼꼼히 공부했다.
결과적으로 전산회계 2급 자격증을 91점이라는 성적으로 취득할 수 있었다.
2025년의 목표는 전산회계 1급 자격증, 전산세무 2급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이다.

 

마무리

정신없이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 2024년이었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만큼 좋은 일도 많았다.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한 해였다.
지금의 고난을 거름으로 삼아 더 큰 목표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회고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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